본문 바로가기
❚ ㅡ 좋은 글& 영상시

■ 느림은 21세기의 새로운 정신적 가치 /피에르 쌍소(Piale Sangso)의 교훈

by Diogenes 2016. 4. 12.

 

                            

                                                                                            

                                                                                  

                                                                   성악선교대학

   

                            ▬▬▬▬▬▬▬▬▬۩ GOOD ۩▬▬▬▬▬▬▬▬▬▬▬

                                                                                         

 

 

 

             Spiegel im Spiegel for Cello and Piano (Arvo Pärt) 

                                                                              

    

                                                                                            

 

 느림은 21세기의 새로운 정신적 가치 / 피에르 쌍소(Piale Sangso)의 교훈
 

 

§제 1부- 지나치게 빠르게, 너무 열심히 사는 사회에서 ...
                                             - 행복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наррч Ŀøνё′

 

 

―서로 따뜻하게 보듬을 여유가 없는 사회에서 사는 우리에게
       느림은 상생과 통섭을 추구하는 21세기의 새로운 가치.

 

1-우리가 정말로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돈과 성공에 눈 먼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허둥지둥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물질 만능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속도에 다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돈과 성공을 위해 내 인생을 허비하라고 부추기는 우리의 사회철학
   내지 흐름을 좀 바꾸면 어떨까.

 

   이러한 사회풍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피에르 쌍소(Piale Sangso)의 느림의 가치
   를 지금 우리는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불과 반세기만에 수백 년 걸릴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온 우리 사회는 불행하게
   도 그 여파로 ‘빨리빨리병’에 걸리고 말았다. 무리한 성장과 성공 신화 속에 반드
   시 지켜져야 할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자유에 대한 다양한 가치는 무시되고
   배려 받지 못했다.

 

   다른 나라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사회철학자 피에르
   쌍소(Piale Sangso)의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는 그러한 상황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한국인에게 하나의 커다란 깨달음이었다.

 

3-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소중하게 여길 수 없는 기능주의적 사회에서 우리는
   지금 행복할 수 없다. 개개인의 삶에 대한 다양한 가치가 살아 있는 사회철학만이
   우리의 삶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장석주의 말처럼 “느림은 상생과 통섭을 추구하는 21세기의 새로운 가치
   이며, 서로 따뜻하게 보듬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를 다시 읽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견디기 힘든 상처를 안은 2014년 한국의 봄,
   우리의 일상에 ‘느림’은 부드럽고 치유적이며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 되어줄 것이다.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것, 일상에 쉼표를 찍는 행위는 생각보다 더 많은 기쁨을
   가져다준다. 느림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시간을 천천히, 경건하게, 주의 깊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4-저자는 한가롭게 거닐고, 글을 쓰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휴식을 취함
   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숨 쉴 수 있게 하라’고 한다. 그것은 빠른 속도에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는 의지, 지금 우리가
   어디쯤 서 있는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잊지 않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한다.

 

5-사실 느리게 사는 삶은 자본가와 개발업자들, 화폐만능주의자를 제외한 도시
   소시민, 샐러리맨, 노동자 대다수가 원하는 삶이다. 느리게 사는 삶을 간절하게
   원하는 계층은 느리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림은 늘
   게으름으로 매도당하고, 경쟁력 없는 패자의 허상이 되었다.

 

6-우리는 과도한 노동을 숙명으로 여기며 노동의 한계를 한층 우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풍조로 한결 높아진 이상을 좇아 몸을 혹사시켜 왔다. 정신없이 시간
   에 쫓겨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것을 꿈꾸지만, 현실
   은 결핍의 갈증 속에서 끊임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그리고 일에서 은퇴할 즈음이
   면 몸과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끊임없이 뒤로 미루어 놓았던 인생의 참맛
   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럭저럭 인생을 마치게 된다.

 

7-피에르 쌍소(Piale Sangso)는 “지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 느림보들을 좀처럼 배려하지 못한다. 오히려 느림보들을 완전히
   제압해서 문 밖으로 가차 없이 밀어내버린다”고 날을 세우며, 이러한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 를 지향하는 삶은 불완전한 수많은 욕구들에만 관심을 기울여
   결국 “춤추는 법, 사랑하는 법, 죽어가는 법, 안부 인사하는 법 …눈물짓는 법,
   웃는 법, 코를 푸는 법”까지도 가르쳐야 할 지경에 이르러 결국 “집단 혹은 사회
   전체의 결정적인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느림은 “인간자연이 깊이 존중하며 부드럽고도 우아하게 보듬”는 것
   이며 “나만의 속도에 맞추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운명의 여신이 나를 위해 미리
   정해둔 속도에 맞추어 살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라”고 요청한다.

 

 

 

                                                                                           

 

 

         

 

§ 제 2부- 지금은 느림이 번창하는 사회,
                            느림이 번창하는 나라가 잘 사는 세상이다

────────────────────────────────────────наррч Ŀøνё′

 

 

―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삶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 우리가
    느껴야 할 것들을 오히려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정해놓은 인생의
    속도를 버리고 느리게, 단순하게, 소박하게, 고요하게 사는 삶에 대한 의미
    발견하는 것은 소중하게 주어진 자신의 삶에 대한 최상의 예의이다.

 

1-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던 2000년 밀레니엄이 도래하던 시대, 모두가
   한목소리로 빠름 성공을 숭상했다. 이에 맞춰 미친듯이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하루를 소모하는 것에 지쳐 문득 의문을 품었을 때, 관습처럼 바삐 움직이는 생활
   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이가 있었다. 바로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피에르
   쌍소(Piale Sangso)이다.

 

   그는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원제: Du bon usage de la lenteur ‘느림의
   올바른 사용법’)』를 통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삶 중에는 빠르고 효율적인 것과는
   다른 삶의 가치도 있음을 환기시켰다.

 

2-그가 강조한 삶은 우리 시대의 낡은 가치들 중에서도 가장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던 ‘느림의 삶’이었다. 느림의 삶이 현대인에게도 통용될 수 있을까?
   쌍소는 이 책에서 자신에게 맞는 정상적인 인생의 속도를 찾아, 살아 있음을
   음미하는 여유로운 삶에 대한 필요성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삶에 있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가수 이효리가 제주도에서 찾아낸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인 느리고, 자연스런 삶을
   최근에 ‘적극적으로 선택’했듯이 말이다.

 

3-전 세계 수십 만 독자들은 쌍소의 느림에 대해 공감했고, 자신의 삶을 다시
   진지하게 되돌아보았다. 보다 진정한 삶의 의미에 알맞는 ‘정상적인 인생의 속도
   를 발견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책은 출간 즉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특히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삶의 속도를 유지하는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수년 간 베스트셀러 및 각 기관 추천도서의 역할을 지속해 왔다. 공명 출판사
   는 우리나라 최고의 불어 번역가로 손꼽히는 강주헌의 번역으로 이 책을 새롭게
   선보였다.

 

4-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아직도 개인의 행복을 무시한 사회 전체
   의 기능주의적 속도전에 매몰되어 있다. 모두가 앞만 보며 달려가는 삶이지만 하루
   하루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고, 바쁘게 하루를 보내도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허탈함상실감에 시달리고 있다.

 

5-▶법정 스님이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도 쌍소는 느리게 살 필요
   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느림’은 개인의 자유를 일컫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라고 여러 번 이 책을 소개했듯이 개인의 삶에서 효율 이상의 것, 인생 성공에 대한
   의미, 개인이 마음껏 행복할 수 있는 자유, 삶에서 음미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고
   풍족한 삶을 누리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시, 느림의 가치이다.

 

 

 

§ 제 3부- 소박하고, 풍요롭게, 서로를 보듬으며

                                  세상과 화합하는 느림의 가치

────────────────────────────────────────наррч Ŀøνё′

 

1-피에르 쌍소(Piale Sangso)는 느리게 사는 삶의 자세 9가지를 제시한다.

 

-한가로이 거닐며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것,
-다른 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
-대상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까지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음미할 것,

 

-일상을 재창조하고 새롭게 하는 공상의 시간을 가질 것,
-기다림에 지치지 말 것,
-내면의 고향을 만들 것,

 

-자아에게 다가가기 위한 글을 쓸 것,
-포도주가 주는 지혜를 잊지 말 것,
-우아하고 여유롭게 삶을 즐길 것 등

 

2-세상을 넉넉히 받아들이며 인생길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길은 하나같이 소박하며 일상적이지만 우리 삶을
   보다 만족스럽고 풍요롭게 만들 기회를 제공해준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뒤처지거나 도태해서는 살아 남을 수 없다’
   는 강박주의적인 사회의 보편적 룰을 벗어나 인생의 자유를 되찾는 법을 알려준다.
   한가롭게 산책하며 사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아하고 여유롭게 삶을 즐기기를
   권하는 이 ‘느림’의 철학은 목적도 없이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발맞춰 살아가며 잊고
   지냈던 ‘나’를 찾게 해주며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타인들과 기쁜 마음으로 손잡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 줄 것이다.

          -[교보문고 제공] 

 

■펌처/ Sun Land 2015.02.08- http://blog.daum.net/sun6377/5062294

 

 

                                                                                          

 

 

§ 제 4부- 책 속의 좋은 글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쌍소 著>

────────────────────────────────────────наррч Ŀøνё′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
   하는 것이다.(p13)

 

그러니까 “나는 누구였던가? 지금 나는 누구인가? 내가 언제 누군가에게 잘못
   을 저질렀던 일은 없었던가? 어떤 신념을 배반한 일은 없었던가? 언제부터 나는
   내 운명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던가?”하는 식의 질문들을 스스로 던져
   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진실한 모습과, 그리고 인간의 상황과 용감하게 맞서
   보라는 말이다.(p26)

 

한가로이 거니는 것. 그것은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게 쫓겨 몰리는 법 없이 오히려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p41)

 

“눈에 보이는 것에 유의하라.
   주목할 만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라.(p42)

 

사실 한가롭게 거닐 때 느끼는 행복은 우리의 시선을 통해 발견되는 것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걷는 행동 그 자체에서, 자유로운 호흡 속에서,
   그리고 아무것도 기분을 거슬릴 것이 없는 시선 속에서 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을 누리는 것이 정당한 일이기나 한 듯이 세상 안에서 느끼는 여유로움 속
   에서 오는 것이다.(p43)

 

 

내가 말하고 싶은 한가로이 걷는 자’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 자와는 다르다. 
  그는 기억에 남을 만한 모험을 하고 있는 중이며, 자기 존재의 상당 부분이 이 모험
  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홀가분한 걸음걸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태도에는 
  어떤 진지함이 배어 있는 것이다.(p50)

 

“부드러움. 느림. 안식, 이것이 바로 숨쉬는 몽상이 추구하는 것들이다.
   구석진 공간이 정적을 허락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p78)

 

“청춘을 완전히 손안에 쥐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어가야만 한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는 창조적인 상상의 세계의 도움을 입어, 그제야 비로소 우리의
   유년기를 갖게 된다. “때로는 방 안의 가구 하나가 몽상에 의해서 끊임없이 수정
   된 내적 관점을 갖는 수도 있다.” ‘수정’이라는 표현은 이렇듯 몽상에 까다로운 
   작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p79)

 

이때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과 ‘우리의 현재모습’
   사이의 거리를 마한다. 그리고 다소 시간이 걸리는 장기 계획을 세우기를 거부하
   는 사람은 토막난 짤막짤막한 시간들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삶에서 기다림이란 단지 주문한 물건이 배달되는 시간, 혹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지나가야 할 길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해야 할 방법들을 계산해
   보는 시간 정도일 뿐이다.(p91)
 
기도하는 것, 그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다”라는 
  기도문과 같이. 또한 기도는 기다리는 것이다. 하느님과 약속을 정하고서 그분의 
  소매를 잡아 끌어당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느님, 몇 시에 저를 만나러 나와 주세요 하는 식으로) 
  그런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p96)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만들되,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전해 주기
   위해서 라든가 자신의 재능을 과시할 목적에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참모습에 더
   접근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동안 내내 ‘게으름을 피우지 않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라면, 삶에 대한 성찰이라든가 분석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
   이다. 그런 작업에는 반드시 인내와 겸손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실체성을 지닌 존재를 대상
   으로 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자신의 참모습을 용감히 마주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 이상 자신의 가장된 모습에 속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 가운데서 작업할 수 있을
   뿐이다.(p107)

 

우선은 예술가가 자신의 존재를 잘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본질에 이르기전에 먼저 온갖 종류의 매력적인 소란 속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그 소란 속에는 치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진정한 예술
   가라면 언젠가는 그 시선이 단순한 미적인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p110) 

 

 

 

────────────────────────────────────────наррч Ŀøνё′

 

 

소유가 우리를 괴롭히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궁핍을 모르게,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크게 부풀려 주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재물이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하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p130)

 

나는 끊임없이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은 능력을 지니고, 더 나은 가치를 지니고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같은 욕망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애정이 결핍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이다. 우리를 이같은
   광기와 상스러운 무지로부터 벗어나게 해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곧 절제라는 태도이다.(p131)

 

사실 소유와 능력과 가치를 추구하는 것보다 좀더 고귀한 삶의 자세들이 있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의 가치를 확신한다면, 굳이 사회적 위치를 구분해 주는 흔적
   들을 쌓으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스스로 완전히 자유롭고 흠없는 
   존재로 이해한다면, 굳이 타인들을 굴복시키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성스러운 삶을 바라보려고 할 것이다. 성스러움이라는 가치에 비하면
   성공의 표시들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관대함이라
   는 가치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이며, 타인들과
   평등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 그들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준다.(p131)

 

 

절제라는 미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나는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기술’

  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기술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적은 것만으로 만족하도록 선동하여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적은 것으로 출발해서 놀랍도록 창조적인 힘을 발휘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해야 
  할 일을 자진해서 찾아 하는 것이 필요하다.(p132)

 

내가 부러워하는 행복이란 안락함이나 성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기쁨
   을 맛보고, 그런 기쁨들과 조화를 이루는 능력, 그리고 그런 기쁨을 자주 만들
   어 내는 능력에서 오는 것이다.(p134)

 

나는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 행복
  으로 부터 벗어나게 할 것인지는 잘 알고 있다. 바로 끊임없는 수다, 쓸데없는 
  일들, 한 마디로 ‘헛된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p136)

 

 

느림과 독창성의 관계는 어떨까? 영감을 받은 사람은 가장 적당한 기간 안에
   가장 좋은 해결책을 만들어 낸다. 그는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는 더 이상 창조적인 행동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이 영감의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 어쩌다 사람들이 그만큼 즉각적으로 재기 있는 대답을 했다면, 이
   이미 획득된 노하우에 의존한 것이지 영감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새로
   운 길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스스로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시간
   이 걸리기 때문이다. 
  

   빠름은 자신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반면 느림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 사실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자신이 찾았다고 생각
   하는 것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보여 준다.(p145-146)

 

내 경우는 단단히 움켜쥐기보다는 쓰다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목표를 향해 곧장 달리기보다는 기분 좋게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더 좋아
  하며, 누군가에게 금방 다가서기보다는 다가가기 전에 잠깐 그 사람 앞에 멈춰 
  서서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또한 모든 것에 능통한 자로 보이기보다는 
  어수룩한 자로 여겨지는 것이 더 좋다.(p148)

 

 

내 생각이지만, 이처럼 문화가 넘쳐나는 문화 속에서는 문화를 거부하는 유감
  스러운 문화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 때문에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결과가 생긴다거나, 혹은 한 문화 
  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협 때문에 ‘모든 것을 문화화하는 문화’가 생겨나게 
  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p176)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 사람들이 마음대로 머물 수 있고, 때로는 
  시름에 잠겨서 발길 닿는 대로 산책도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공간을 보존하거
  나 혹은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이처럼 소박한 계획은 무엇보다도 우리 도시의 외관을 바꾸어 놓을 것이고, 
   리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정책을 준비하게 할 것이다.(p186)

 

 

느림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갖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로 하여금 불필요한 계획
   에 이리저리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명예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의 과제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계획한 과제의 종착역에 다소 빨리 도착하고 안하고는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p201)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태어날 것이다. 내일 나는 다시 한번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물을 향해 손을 뻗을 것이다.
   계절의 바퀴는 돌아갈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
   모든 계절이 내게는 정겹고 아름답기만 하다.(p230) 

 

 

펌처/ ☆글쓰는 아리숑☆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oundej85&logNo=220667382774